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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철의 직썰] 유희열이 부른 '거짓말 같은 시간'

직썰 2022. 7. 12. 10:20

[직썰 / 권오철 기자]

먼저, 내가 20년 넘게 그룹 '토이'의 팬임을 밝힌다. 1996년 '015B(공일오비)'가 활동을 중단한 이후 접한 토이의 노래들은 내게 안식처이자 깊은 위로였다. 굳이 유희열이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FM음악도시'를 찾아 듣진 않았지만, 노래방 18번은 '텅빈거리에서'와 '바램'이었다. 지금도 토이의 웬만한 노래들은 가사를 안 보고 부른다.

 

또한 이 글은 '가치', 'SoundT', '준조', 'palebluenote', 'Zor ba' 'Goldy' 등 유튜브를 통해 접한 분들에게 강하게 영향을 받았음도 밝힌다. 이분들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존경)'인 셈이다. 누군가는 '표절이 아닌가'라고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이것을 미리 밝히는 것은 '레퍼런스(참고)' 논란을 겪고 있는 유희열을 향한 글을 쓰는 데 일말의 양심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럼 시작해 보자.

 

"녹음기 있으면 가지고 와봐. 내가 네 노래를 들었지만, 절묘하게 다른 느낌으로 곡이 하나 나올 수 있으니까. 내 곡으로."

 

유희열이 지난해 4월 JTBC 예능프로그램 '유명가수전'에서 후배 가수 이무진의 창작곡을 들은 직후 농담처럼 건넨 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이는 예능적 농담이 아니라 유희열의 진심이었을 것이란 게 내 생각이다. 다른 작곡가의 곡을 참조해서 자신의 음악으로 재탄생시키는 것. 이곡, 저곡에서 좋아하는 부분을 따와서 서로 어울리게 이어주는 것. 이것이 유희열이 1994년 발매한 토이 1집부터 최근 '생활음악 프로젝트'까지 일관되게 적용해온 작곡 방식이란 얘기다. 

 

사실상 비밀도 아니었다. 그는 공공연하게 라디오 진행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이 추종하는 다른 뮤지션들의 곡들을 팬들에게 소개하고 반복적으로 들려줬다. 그런 곡들이 곧 토이 앨범 수록곡으로 나오면, 일부 팬들은 레퍼런스 방식으로 재해석된 곡임을 알아채기도 했다.

 

또한 유희열은 직접적으로 오마주한 사실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1999년 윤종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자유지대'에 출연해 삽화집 '익숙한 그 집 앞'에 수록된 곡들과 관련해 "3명의 좋아하는 작가들을 오마주했다"고 말하며 "에릭 사티(Erik Satie), 팻 매쓰니(Pat Metheny), 윤상"을 오마주 대상으로 밝혔다. 우리 귀에 익숙한 '라디오 천국'은 팻 매쓰니를 오마주한 곡이다. 

 

실제로는 그와 같은 오마주나 레퍼런스가 보다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까지 유희열의 곡 중에서 레퍼런스로 의심되는 곡은 30곡에 달한다. 그만의 창작 방식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에 앞서, 어쨌든 그의 작품들은 유희열이 '철저하게 의도한 창작 방식'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를 깊이 이해하는 일부 팬들의 시각이다.

 

그런데 유희열은 최근 일본 작곡가인 사카모토 류이치 곡 표절 논란과 관련해 "무의식 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됐다"면서 "저의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안타깝게도 '무의식'과 같은 표현은 팬들로 하여금 그의 진심을 의심하게 했다. 

 

유튜버 'Goldy'는 "그는 절대 무의식으로 곡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면서 "철저하게 의식적으로 완벽하게 장르의 클리쉐를 분석하고, 당대의 음악들을 영민하게 디깅(digging·발굴)하고, 그 곡을 해체하고 조립할 줄 아는 프로듀싱의 레벨에서도 굉장히 높은 기술로 숙련된 뮤지션이다"고 봤다. 

 

이어 "무아지경, 무의식, 순간의 영감을 가지고 곡을 만드는 예술가형 뮤지션이 아닌 철저히 장르를 분석하고 이해해 그것을 재현하는 방식의 자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곡 앨범 작업에도 5~6년을 소모하고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폐기한다고 직접 앨범 설명에 덧붙여왔던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가 지금까지 작곡의 명분으로 삼은 오마주를 무의식의 영역으로 날려버렸다. '레퍼런스를 이렇게 재해석했구나' 하며 눈감아주던 팬들 입장에서도 당황스럽다"면서 "그동안 자랑하던 '음악가의 자존심'보다 '무의식이라는 비의도성을 강조하는 법적 책임의 회피 기술'이 앞서는 순간, 팬들 입장에선 그의 지난 창작들을 의식적으로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팬들 외에도 오마주니, 레퍼런스니 하는 것은 까맣게 모르고, 그 수많은 곡들이 유희열의 '순수 창작물'인 줄로만 알았던 팬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은 이번 표절 논란에 "유희열이란 한 사람과 그의 음악을 수십년 동안 좋아하던 지난 세월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느낌"이라며 충격을 호소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바로 이들이 아닐까. 공들여 쌓아올린 장난감이 무너지듯, 망가져버린 팬들의 추억을 어떡하면 좋을까. 

 

이제라도 유희열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심어린 태도로 상처입은 팬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길 바란다. 이 시기를 극복하고 앞으로의 여생에도 기억 속에 유희열과 토이를 간직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바란다. 

 

부디 '거장의 용서와 격려' 뒤에 숨지 말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유튜버 'Zor ba'의 글을 전해드린다. 

 

편의점에서 한 아이가 물건을 훔쳐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어. 
그걸 발견한 다른 손님이 아주 노쇠한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린 거야.
그러자 도둑으로 몰린 아이는 자신은 훔칠 의도가 없었다 말했고,
주인은 아이를 너그럽게 용서해주며 격려해주었지. 
이에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지었고, 나는 우두커니 이 상황을 바라보았어. 
노쇠한 주인의 바다처럼 깊은 인격에 삶의 희망을 느꼈으며, 
자신의 안전에 안도하는 아이의 표정에 깊은 절망을 느끼는 하루였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만 너는 모르는 이야기.